봉인을 풀며
가을, 꿀벌 벌통 앞. 주황색 머리의 커다란 말벌 몇 마리가 입구를 지키는 꿀벌을 하나씩 물어 떨어뜨립니다. 지키는 벌이 사라지자 말벌 무리는 벌통 안으로 들어가 애벌레를 꺼내 갑니다.
정체
장수말벌.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 사는 말벌로, 미국 농무부(USDA)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 종'이라 부릅니다. 국내 언론은 독성이 강하고 독의 양이 많아 쇼크를 일으키기도 하는, 한국에서 가장 위협적인 독충으로 소개합니다. 미국에서는 '북방장수말벌(northern giant hornet)'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기록
미국 플로리다대학 자료에 따르면 장수말벌은 10~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꿀벌 벌통 하나를 공격합니다. 입구를 지키는 꿀벌의 머리를 물어뜯어 하나씩 없앤 뒤 벌통을 차지하는데, 꿀벌 약 3만 마리가 사는 벌통이 몇 시간 만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수말벌과 함께 살아온 일본 토종꿀벌은 맞서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1995년 네이처 연구에 따르면 말벌 한 마리를 꿀벌 500여 마리가 순식간에 감싸 '공'을 만들고, 그 안의 온도는 약 47℃까지 오릅니다. 꿀벌은 견디지만 말벌은 견디지 못하는 온도입니다. 2009년 연구는 공 안에 쌓인 이산화탄소도 말벌을 죽이는 데 한몫한다고 보고했습니다. 2019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처음 발견된 장수말벌은 5년의 추적 끝에 2024년 미국에서 '박멸'이 선언됐습니다.
저는 거대한 사냥꾼을 이긴 무기가 독침이 아니라 작은 꿀벌 수백 마리의 '체온'이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큐레이터 암모나이트의 노트
출처
- 미국 농무부 동식물검역청(USDA APHIS) — Victory Over the World's Largest Hornet Species
- 미국 플로리다대학 IFAS — Asian giant hornet, Vespa mandarinia (IN1281)
- Ono 외 (1995) Unusual thermal defence by a honeybee against mass attack by hornets — Nature 377:334
- Nature (2009) Animal behaviour: Smothered by a swarm — Nature 460:308
- 세계일보 (2021.9.10) — 장수말벌·땅벌 등 강한 독성·공격적 습성…쏘이지 않도록 조심
- 사진: LiCheng Shih / Wikimedia Commons (CC BY 2.0) —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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