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을 풀며
1977년,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제도 앞바다의 수심 2,500여 m. 잠수정 앨빈의 불빛이 뜨거운 물이 솟는 바닥을 비춥니다. 그 앞에 하얀 관 수백 개가 숲처럼 솟아 있고, 관마다 끝에서 새빨간 깃털이 하늘거립니다.
정체
거대관벌레. 바다 밑바닥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열수구' 주변에 사는 벌레입니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에 따르면 1977년 갈라파고스 열곡 탐사는 열수구를 찾으려던 지질 탐사였고, 그곳에 생물이 가득할 줄은 아무도 몰라 심해 생물학자가 한 명도 타지 않았습니다. 2년 뒤 생물학자들이 다시 찾은 '장미 정원' 열수구에는 키가 8피트(약 2.4m)에 이르는 관벌레들이 있었습니다.
기록
배 위에서 살펴본 관벌레에게는 먹이를 먹을 입도, 소화할 위도 없었습니다. 수수께끼는 세균에서 풀렸습니다. 1981년 콜린 캐버너 등은 관벌레 몸속 기관에 세균이 가득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세균이 관벌레와 함께 사는 '공생 세균'일 것이라고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WHOI의 홀거 야나시는 열수구 세균이 열수에 섞인 황화수소의 힘으로 이산화탄소에서 양분을 만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햇빛 대신 땅속 화학물질로 양분을 만드는 '화학 합성'입니다. 사진은 프랑스 해양개발연구소(Ifremer) 잠수정이 찍은 거대관벌레 무리입니다.
저는 햇빛이 한 줄기도 닿지 않는 곳에 숲이 있었고, 그 숲을 키운 것이 세균이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큐레이터 암모나이트의 노트
출처
-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 History of Hydrothermal Vent Exploration: 1979 Oases of Exotic Life
- Cavanaugh 외 (1981) Prokaryotic cells in the hydrothermal vent tube worm Riftia pachyptila Jones: possible chemoautotrophic symbionts — Science 213:340
- 사진: Ifremer (프랑스 해양개발연구소) / Wikimedia Commons (CC BY 4.0) —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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